나는 13세기 티베트 불교, 몽골 권력과 종교 권위의 관계, 그리고 아시아 전역을 오간 의례와 물질문화의 흐름을 공부할 때마다 사캬라는 이름을 만나왔다. 문헌 속 사캬는 하나의 거대한 제도이지만, 현장에서 처음 받은 인상은 훨씬 물질적이었다. 고지대 풍경 속에 짙은 적색·백색·회청색 벽이 거대한 덩어리처럼 솟아 있었고, 그 윤곽에는 거의 군사 시설과 같은 긴장감이 있었다.
사원은 시가체 서쪽 짱 지역에 자리한다. 사캬 전통에서는 1073년 콘 콘촉 걀포가 이곳에 거점을 세운 것을 사캬파의 출발점으로 본다. 안뜰에 들어서자 사진만으로는 이 건축의 ‘무게’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꺼운 벽, 개구부가 적은 입면, 응축된 건축 덩어리가 전체를 요새처럼 느끼게 한다.
이 건축은 정치사의 흔적을 공간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13~14세기 사캬는 단순한 사원이 아니었다. 사캬 판디타와 몽골의 관계, 이어서 그의 조카 ’Phags-pa와 쿠빌라이의 관계를 통해 사캬파의 고승들은 원 제국의 정치·종교 질서 중심에 놓였다. 그렇다고 “사캬 승려들이 티베트를 통치했다”고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몽골 권력, 종교 지도자, 민정 행정관의 권한이 겹치는 복합적인 체제였다. 그러나 이곳을 직접 걷다 보면 사캬가 획득했던 제도적 규모를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나에게 사캬가 특히 중요했던 것은 고려에 관한 연구가 결국 이 세계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단순화는 피해야 한다. 원대에 한반도로 들어온 모든 티베트 불교 요소가 사캬에서 직접 전래된 것은 아니다. 내가 이곳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사캬파를 포함한 티베트 고승들과 몽골 제국 권력이 만들어 낸 정치·종교적 구조, 그리고 13세기 후반부터 고려가 그 구조 안으로 점점 깊이 편입되는 과정이었다. 《고려사》는 그 결과를 매우 구체적으로 전한다. 1271년 삼별초 진압 과정에서 포로가 된 진도 출신의 Dge bshes Se-pa(吃折思八)는 원의 영역에서 출가하여 티베트 불교 전통을 익힌 뒤 1294년 개경으로 돌아왔고, 그의 귀환과 함께 티베트 불교 경전과 의례구도 고려 조정에 전해졌다. 또 1314년에는 한 티베트 승려가 고려 조정에 1만 8천 점이 넘는 것으로 전해지는 방대한 티베트 불교 문헌을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내가 사캬에서 찾고자 한 것은 하나의 단일한 ‘기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러한 이동과 번역, 재구성을 가능하게 했던 광대한 제국적 네트워크의 핵심 제도 공간 가운데 하나를 직접 확인하는 일이었다. 고려에서 내가 추적하던 도상·의례·물질문화의 흔적은 이곳에서 훨씬 넓은 유라시아적 깊이를 얻었다.
안뜰에서 실내로 들어가는 순간은 이번 방문에서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바깥에서는 돌과 벽의 거대함이 지배적이지만, 안에서는 빛이 급격히 줄어들고 색이 짙어지며 불상들이 어둠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조각 자체뿐 아니라 그것이 직물, 공양물, 등명, 작은 상들과 함께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를 오래 바라보았다. 박물관에서는 작품을 홀로 떼어내어 보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 성상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이 차이는 불교미술사를 위해 중요하다. 금동상, 소조상, 회화, 제단은 양식·도상·연대에 따라 분석할 수 있지만, 사캬에서는 계속 그 기능을 의식하게 된다. 직물, 공양물, 예배의 흔적과 공간의 변화는 이 대상들이 지금도 종교적 실천을 통해 활성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촬영한 것은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종교 공간이었다.
나는 이 조상군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Phags-pa가 칭기스 칸과 쿠빌라이 칸 사이에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종교적 스승과 제국 군주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것은 고려 연구에서도 핵심적이다. 고려가 받아들인 것은 막연한 ‘몽골 불교’가 아니라 티베트 종교 지도자와 제국 권력이 상호 작용하며 형성한 종교문화였다. 이 상들은 사캬와 고려 후기 왕실 불교의 변화를 내 연구 속에서 직접 연결해 주었다.
지적으로 가장 압도된 곳은 장서 공간이었다. 높은 목제 서가에는 포갑에 싸인 문헌들이 벽 전체를 채울 정도로 쌓여 있었다. 사캬는 티베트의 대표적인 문헌 컬렉션 가운데 하나를 보존하며, 대장경 계통 문헌과 고사본들이 포함된다. 여행기나 대중적 소개에서는 때때로 이곳을 “제2의 둔황”이라고 부른다. 과장될 수 있는 표현이므로 조심해서 써야 하지만, 실제 공간이 주는 규모감을 어느 정도 전달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서가 앞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가르침이 전달되기 위해 필요한 물질적 연쇄였다. 불교 문헌은 추상적인 ‘사상’이 아니다. 베껴 쓰고, 번역하고, 교정하고, 인쇄하고, 운반하고, 보존하고, 읽어야 한다. 티베트·중국·고려를 잇는 종교 교류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물질적 기반은 교리만큼 중요하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제도 불교와 지역 전승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지붕 위에는 현지 이야기에서 “마녀의 예배당”이라고 불리는 작은 공간이 있다고 전해지며, 해로운 여성 영이나 주술적 존재를 조복하기 위한 곳이었다는 전승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전승 자체로 남겨두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는 티베트의 성스러운 경관이 지역의 힘을 제압하고 보호의 힘으로 전환하는 이야기를 포괄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캬를 떠날 때 내게 남은 것은 고립된 하나의 명찰이 아니라 여러 흐름이 교차하는 결절점이었다. 연구와 신앙, 건축과 정치 권력, 물질문화와 문헌 전승, 티베트사와 유라시아적 네트워크가 만나는 곳. 실제로 이곳을 걸었다는 경험은 문헌만으로는 추상적으로 보이던 역사 과정에 크기와 빛, 재료감을 되돌려 주었다.
기본 정보
창건: 1073년, 전통적으로 콘 콘촉 걀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함.
위치: 짱 지역 사캬, 시가체 권역.
좌표: 약 북위 28.905°, 동경 88.018°.
전통: 티베트 불교 사캬파.